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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오랫동안 이어진 식이장애, 치료와 재발의 이야기

by honeypot 2023.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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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허프포스트에 실린 빌리 레즈라(Billy Lezra)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녀는 인생의 대부분을 식이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완치와 재발의 과정을 허프포스트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단식을 하게 된 때는 12살의 크리스마스 직후였다. 엄마와 나는 10일 동안 전혀 음식을 먹지 않았고 레몬 주스와 메이플 시럽을 섞은 물을 간간이 마시면서 버텼다. 

 

출처: Huffpost

 

My Eating Disorder Raged For Years. I Recently Relapsed — Here's How I Found My Way Back.

"For as long as I could remember, people told me I would look and feel better if I lost weight. ... By the time I was 10, I ritually put myself on weird diets."

www.huffpost.com

 

 

처음 72시간 동안이 가장 힘들었다. 엄마와 나는 어지럼증과 구토를 느끼며 창백한 얼굴로 집 거실에 있는 노란색 쇼파에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단식 기간이 끝난 후에는 내 몸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사실 엄마가 단식을 권유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몸이 가벼워 지고 살이 빠졌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10살 때 즈음부터는 스스로 이상한 다이어트를 주기적으로 하게 되었다. 어느 여름 방학 때에는 과일만 먹은 적도 있다.

 

그런데 이 단식의 경험 이후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었다. 어른들은 돌출된 내 광대뼈와 쇄골뼈를 보고 찬사를 보냈고 그동안 나한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학교 친구들도 갑자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점심시간에 서로 자기 옆에 앉으라고 권했다. 심지어 선생님도 더 친절해졌다.

 

그 후 난 체중 감소가 가져다 주는 사회적 특권에 즉각적으로 중독되기 시작했다. 검은색 유리로 된 체중계를 사서 붉은 디지털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전기적 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14살이 되던 해, 나의 다이어트와 단식은 거식증과 폭식증으로 전이되었고 27세가 될 때까지 악화 일로를 걷게 되었다. 그리고 난 치료 절차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빌리 레즈라(Billy Lezra)
라스베가스에 있는 네바다 대학교 대학원에 재학중인 작가, 빌리 레즈라(Billy Lezra)

 

이 글은 내가 어떻게 약 3천만 명(병원 진단을 받은 사람만)의 미국인들이 일생동안 겪고 있는 질병이자 매 52분 마다 한 명씩 사망하게 만드는 질병인 식이장애로 부터 극복했는지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다. 이 경험담에서 나는 어떻게 나의 식이장애가 "재발"했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재발(영어: relapse)"라는 단어는 미끄러지다, 혹은 다시 주저 앉는 것을 의미하는 라틴어 "relapsus"에서 나온 말이다. 난 지난 추수감사절을 전후해서 다시 미끄러졌다. 난 대학원 진학을 위해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 당시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었고 처음으로 테킬라에 의지하지 않는 학업 환경을 이어가고 있었다. 가장 혹독한 학기가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집에 불을 밝히기 시작하던 바로 그때, 나의 원래 중독인 "체중감량"의 병이 다시 찾아왔다.

 

공부하는 틈틈이 나는 유명인들이 나와서 그들이 하루에 먹는 음식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의 "푸드 다이어리(Food Diaries)"를 보고 또 보았다. 나는 내 위장을 찌르는 배고픔의 고통을 참기 위해 아름다운 사람들이 나와서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이야기하는 영상을 미친듯이 소비했다. 하지만 곧 다시 폭식을 시작했다.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의 푸드 다이어리(Food Diaries)
유명인들이 나와서 그들이 하루에 먹는 음식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하퍼스 바자( Harper’s Bazaar)의 "푸드 다이어리( Food Diaries)"

 

다른 중독 증상들과 마찬가지로 식이 장애는 은밀히 조용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재발이 시작되었다고 주위에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재발되었다고 주위에 알리는 순간, 나를 잠식하던 식이장애는 잠시 느슨해질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식이장애가 나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재발 사실을 알리는 순간 나의 안정감은 중심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사실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추수감사절이 지난 몇주 후, 7년 동안 함께 해온 연인인 리암과 함께 난 차로 동네를 드라이브하며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무에 감긴 반짝이는 전기 불빛들과 각종 장식들이 조용한 동네를 밝히고 있었다. 그때 리암이 물었다.

 

"핫 초콜렛 한잔 할까?"

 

난 주저했다. 초콜릿은 나에게는 "나쁘고", "위험한" 물질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넌 먹어. 난 안먹을래."

 

리암은 다시 물었다. 

 

"넌 왜 안 먹어?"

 

"그냥 별로야."

 

운전대를 꽉 잡으며 리암이 말했다.

 

"내가 그동안 느낀 걸 얘기해야겠어. 넌 거의 먹질 않아. 그리고 가끔 먹을 때에도 화장실에 가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지. 그리고 내가 아이스크림이나 요구르트 등 단 걸 먹자고 할 때마다 넌 싫다고 해. 내 생각엔 (식이장애가) 재발된 것 같은데, 아니면 내가 착각하는 거야?"

 

난 들킨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낯선 사람이 들이닥친 것처럼 팔다리로 몸을 감쌌다. 목에 뭔가 뜨거운 것이 넘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마침내 대답했다.

 

"네가 착각하는 거야."

 

리암은 빨간불 앞에서 정차하며 나에게 물었다. 그의 푸른 눈가에 염려하는 주름이 생겼다.

 

"확실하지?"

 

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추위에 몸을 움츠렸다. 리암은 내가 3년 전 식이장애 치료를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내 상태를 털어놓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또한 재발이 시작되는 징후를 적은 리스트를 그에게 주고 지켜보게 했으며, 이 식이장애의 본성상 재발이 발생해도 나는 계속해서 감출 것이며 물어봐도 거짓말할 것이라고 미리 경고를 준터였다.

리암과 빌리(오른쪽)

 

창밖의 선명한 초록색의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라보며 나는 내 안의 두 가지 반대되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중 식이장애의 목소리가 더 컸다. 목표는 계속 유지하는 것이었다. 식이장애는 나에게 소리쳤다.

 

식이장애가 재발한 것이 아니라 알레르기라고 그에게 말해.
난 항상 잘 먹고 있지만 그가 보지 못한 것이라고 그에게 말해.
화장실에 오래 있었던 건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한 것이라고 그에게 말해.

 

하지만 내 안의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는 약하게나마 이렇게 외쳤다.

 

거짓말 그만해.
난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에게 말해.

 

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계속해서 리암을 속이는 것이 더 마음이 아팠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불덩이를 삼키고 또 삼키며 결국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니 착각이 아니야."

 

리암은 내 손을 꼭 잡았다.


미국 국립 식이장애 협회에 따르면, 식이장애 치료 후 재발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한다. 특히 연휴에 모든 종류의 재발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는 활동적인 대인 관계가 집중되고 그에 따른 음식과 알코올의 섭취량이 많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명절 파티와 가족 모임에 대한 초대장이 쏟아져 들어오자 나는 두려움이 커졌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연말의 사교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표현해야 하는 것은 더 큰 고통이다.

 

리암에게 나의 재발을 알리는 것은 내가 또다시 그 힘들고 두려운 치료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속이고 식이장애에 굴복해 버리면 편안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통스럽게 맞서 싸워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에게 치료 과정은 상처가 낫기도 전에 밴드를 떼어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프다.

eating disorder
섭식장애 또는 식이장애의 자기인식

 

식이장애 상담사이자 치료사인 제스 스프렝글(Jess Sprengle)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식이장애와 함께 사는 것은 당신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치료 후에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식이장애는 마치 당신이 좋아하는 소설 속의 캐릭터처럼 계속해서 당신을 부르고, 함께 하고 싶어 하고, 안정감을 선사합니다. 그래서 종종 그 캐릭터와 다시 만나기 위해 책을 다시 읽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당신의 치료와 회복이 진전될수록 당신의 그 책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고 더 넓은 세상에서 새로운 책을 읽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당신 자신이 그것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재발에 대해 더 알게 되면 될수록 왜 내가 왜 재발의 늪에 잘 빠지게 되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나를 안정시키는 익숙한 캐릭터를 다시 소환했지만 그 케릭터는 결국 나 자신에게 아주 해가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는 종종 왜 나는 나를 아프게 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해왔다. 그러나 그 질문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그 대신 내가 가진 식이장애가 나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가? 식이장애는 내가 갈망하는 무엇을 주길래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인가? 라고 물어야 했다. 그 답은 바로 '안정감'이었다.

섭식장애를 고백한 연예인들
섭식장애를 고백한 연예인들

 

식이장애를 극복하는 치료 과정은 나에게 안정감을 줄 새로운 케릭터를 찾는 과정이다. 그 캐릭터들 중의 하나는 이미 내 안에 있다.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인다. 식이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가 하는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첫째, 그 목소리는 내 인생에서 파티나 모임을 거절하라고 요구한다. 보통 나는 나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초대에 잘 응하는 편이었다. 그 대신 집에 머물고, 청소하고, 리암과 함께 TV를 보거나 고양이와 놀아주었다. 친구 또는 친지들의 초대를 거절할 때마다 내 마음속의 고통은 옅어지고 흩어졌다. 그다음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라는 것이다.

 

2022년의 마지막 날, 난 내가 태어난 고향인 스페인으로 날아갔다. 7년 만에 처음으로 마드리드를 방문하고 이제 가족 중 아무도 거기에 살지 않지만 난생 처음으로 나의 고향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2023년의 첫날, 18년 전 처음으로 단식을 시작했던 그 아파트를 걸어서 지나갔다. 아이비로 둘러싸인 벽돌로 된 건물을 사진에 담고,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근처 식료품점에 들어가 붉은 직사각형 모양의 로고가 있는 익숙한 물병과 내가 가장 좋아했던 아몬드와 바다소금이 뿌려진 진한 초콜릿 바를 샀다.

 

내 안의 식이장애가 말했다

 

"설마 감히 이걸 먹겠다고?"

 

내 안의 다른 목소리가 답했다.

 

"당연하지."

 

난 초콜렛 바를 집어 들었다.

Billy Lezra and chocoate bar
2023년 초 작가의 스페인 방문시 구입한 초콜릿 바와 커피

난 초콜릿이 맛있었다고 말하며 이 글을 해피앤딩으로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 초콜렛 바는 지난 몇 주 동안 그대로 침대 옆 테이블에 놓여있다. 뜯지 않은 채로. 서두에 말했듯이, 이 글은 치료가 아니라 재발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재발과 치료는 마치 공통의 목적지를 향해 손을 잡고 가는 두 캐릭터와도 같다.

 

현재 나의 치료는 내 속에 있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인지하는 단계이다. 그리고 완벽하게 성공하진 못하더라도 그중 더 약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오래가기를 바라고 있다. 치료란 완벽과는 거리가 멀지만 하찮은 나의 작은 발걸음 하나하나를 지지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먹지 못하면서도 초콜릿을 사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것이 회복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작가 소개: 빌리 레즈라(Billy Lezra),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네바다 대학교에서 미술 석사학위 과정(MFA)에 있으며 허프포스트에서 객원 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현재 "로스 애니멀스(Los Animales)"를 집필 중입니다.

 

오늘의 영어:

  • go on a cleanse: 단식에 돌입하다.
  • be languished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 anorexia 거식증
  • eating disorder 식이장애
  • recovery&relapse: (병의) 회복과 재발
  • grad school(graduate school): 대학원
  • puffy eyes: 부은 눈
  • family gatherings: 가족 모임
  • hang out with: ~와 놀다/시간을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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