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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IT

과학자들이 우리의 현실이 가짜라는 것을 증명한다면?

by honeypot 2021.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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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양자역학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세계적인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여러분은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가요? 아니 애초에 이 글이 존재하기는 할까요?

 

"당신 주위에 있는 어떤 것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는 "아니, 그것들이 다 존재하긴 하는데 그것들을 담고 있는 이 현실이 존재하지 않아요."

만약 제가 이렇게 말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친 소리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그렇게 말도 안되는 소리는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괴상한 양자역학의 세계로 한 발짝 들어가 본다면,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선입견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현실이란 마치 영화처럼 꼭 봐야만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앉아있는 의자, 혹은 여러분이 서있는 바닥은 진짜 존재하는 것일까요? 직관적으로 우리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만일 그것들이 진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밑으로 떨어질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 모두는 실제 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는 상황에 대해 이미 익숙합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증강현실을 통해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실제가 아닌 포케몬을 봅니다. 

실제 세계 이외에 온라인 세상이라는 것을 익숙하게 경험하며 살아온 현대인들의 입장에서 더더욱 우리가 "진짜"라고 강하게 믿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양자 바나나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의 하나는 모든 물질은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원자단위의 구조를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원칙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나나를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이 나무에서 바나나를 따서 먹습니다. 당연히 바나나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바나나를 먹지 않고 그것을 분자 단위로 분해하여 일직선상에 죽 늘어놓는다고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그것은 더이상 바나나라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단지 한 무리의 분자들, 바나나가 아닌 다른 용도의 물질이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우주의 모든 물질들을 하나하나 분자 단위로 분해해서 봉투에 넣는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봉투를 마구 흔들어서 내용물을 섞은 후 다시 쏟아놓는다면, 원래의 모습을 하고 있는 물질들은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결국, 산소와 질소는 각각 그 자체로 우리가 유용하게 사용하는 독립적인 단위의 분자들이지만 그것들이 적절히 결합되면 우리가 만지고 씻을 수 있는 물이 되는 것입니다. 

 

양자 상대성

 

이탈리아의 저명한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는 최근 "헬고랜드:양자 혁명 이해하기(Helgoland:Making Sense of the Quantum Revolution)"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에서 로벨리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실체는 물질의 상호작용에서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을 양자 상대성(Quantum Relativity)이라고 하는데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만일 이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우주 자체도 같이 사라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아이작 뉴튼이 생각했던 것처럼 우주라는 공간이 따로 존재하고 그 안에 물질이 있는 게 아니라, 물질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우주라는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이론입니다. 

만일 수많은 행성과 항성 그리고 블랙홀 등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다 없애버리면 공간이나 시간도 같이 사라져 버린다는 뜻이죠.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이론은 아니지만, 마침내 양자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기술적인 진보를 바탕으로 그동안 추정해왔던 이론들을 다시 고려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고대나 중세의 학자들처럼 아주 멀리 떨어져서 '큰 그림'을 보는 관찰자인 신을 가정하지 않는다면, 무한한 우주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은 존재해야만 하는것 아닌가?

 

아뇨,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존재는 존재 자체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이 현실은 완전히 주관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도 역시 세포, 분자, 그리고 원자로 분해될 수 있습니다. 그 원자들은 또다시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전자로 쪼개지고 또 그것들은 쿼크와 렙톤, 그리고 뮤온 등등으로 더 세분화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양자 세계로 깊이 들어가고 있긴 있지만, 아직 그 끝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우주를 관찰하며 이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지 알아가는 만큼, 이 양자세계라는 토끼 굴도 얼마나 끝없이 깊고 깊은지 알게 됩니다. 

카를로 로벨리가 그의 책에 서술한 바에 따르면, 우리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은 다른 모든 물질들과 서로 얽혀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맞습니다. 여러분의 의자는 존재합니다. 여러분이 서있는 바닥도 역시 존재합니다. 우리가 보통 "양자 인접(quantum adjacency)"이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서 "만지고 관계 맺는" 모든 것들이 존재합니다.

양자 세계에서의 나는 생각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맺음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됩니다. 

 

이 모든게 의미하는 것은?

 

만약 우리가 이 양자 상대성이라는 이론을 받아들인다면 위에 말한 바나나 비유를 이해했다는 의미입니다. 양자 수준에서 보면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분자들은 단지 임의의 패턴으로 펼쳐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양자 세계로 직접 들어가 뮤온과 렙톤을 지나 더 깊이 들어간다고 치면 이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들이 서로 구분할 수 없이 비슷해지는 지점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양자 수준에서 우주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거의 동일한 미립자로 구성된 바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버전의 현실은 공간이나 시간 같은 개념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시간은 우리가 관찰과 경험을 통해 의미를 부여한 구조로서 존재할 뿐입니다. 그런 관찰과 경험들은 단지 우리가 양자 우주에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전형적인 부작용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가 돌아가는 큰 틀에서 보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은 그저 찰나에 불과한 목적 없는 분자들의 배열일 뿐입니다. 더 나아가 전체 우주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은 양자 요동에 의해 나타나는 그저 짧은 한순간의 환영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이론은 암흑물질, 방사선, 블랙홀, 타임 크리스털(응집 물리학에서 낮은 에너지 상태의 입자들이 반복운동하는 양자적 상태를 말함)과 다른 흥미로운 양자 작용에 대한 설명을 완전히 제공하지는 못합니다. 

어쩌면 양자 상대성 이론도 이론 물리학 분야의 잠깐 스쳐가는 유행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우주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이론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우리 인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존재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궁긍적인 진실을 규명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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